외부 칼럼 [미디어생활][주간칼럼] 장애인활동지원사 부족: 돌봄 위기 그림자와 정책 대전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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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영/삼육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한국 사회는 지금, 조용히 그러나 매우 심각한 돌봄 위기로 들어서고 있다. 장애인활동지원사 부족이라는 문제는 통계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 여파는 돌봄 현장 곳곳에서 절절히 퍼지고 있다. 특히 발달장애인과 같이 돌봄 수요가 일상 전반에 걸쳐 필요한 이들에게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지속적으로 삶의 기반을 흔드는 일이다.
정부는 장애인 자립생활을 위해 ‘장애인활동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나 정작 이 제도의 핵심인 활동지원사를 구하기 어려운 현실은 ‘제도는 있되, 정작 서비스는 없는’ 상태로 만들고 있다. 활동지원사 1인당 근무 여건, 임금, 사회적 인식 문제는 이미 만성화돼 있고, 특히 비수도권이나 야간·주말 등 비정규 시간대에는 사실상 ‘서비스 마비’에 이르러 가고 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최중증발달장애인과 희귀난치 질환자를 중심으로, 가족이 예외적으로 활동지원사가 될 수 있도록 한시적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2024년 11월부터 시작된 이 제도는 최대 2년 동안 가족이 활동지원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되, 급여의 절반만 지급하고, 일정 교육을 이수해야 하며, 서비스 이용 시간도 제한적으로 인정받는 조건이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는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다. 가족이 돌봄의 최후 보루가 되는 상황에서, 그 돌봄 노동의 가치를 절반만 인정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 한편으로는 사회적 돌봄을 제도화한다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에게 ‘희생을 감내하라’는 이중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돌봄 공공성이 아니라, 돌봄 부담을 사적 영역으로 전가하려는 의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런 정부 정책의 한계를 지방정부가 보완하고 있는 대표 사례가 바로 성남시다. 성남시는 자체 예산을 편성해, 최중증발달장애인의 가족에게 활동지원사 급여를 월 10시간 분량(약 16만 원) 추가로 지급하기로 이달 초 발표했다. 이는 중앙정부 정책을 선제적으로 보완하고, 당사자 중심 서비스 현실을 반영한 결정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성남시는 이 정책을 통해 최대 120가구까지 지원 가능하다고 밝혔다. 물론 대상 수는 제한적이고, 예산도 많지 않지만, 이 시도가 갖는 정책적 함의는 분명하다. 지방정부가 중앙정부 정책의 빈틈을 채우고, 돌봄 대안을 실험하는 장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낯선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높은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할 때, 가족이 활동지원사 역할을 하는 것은 단순한 ‘편의’ 문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돌봄’ 전략일 수 있다.
같은 문제를 두고 미국은 보다 구조적인 접근을 택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3년 4월 ‘행정명령 14095호(Executive Order 14095)’를 발표하며, 돌봄 서비스를 국가전략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 명령은 ‘질 높은 돌봄 서비스 접근성 확대 및 돌봄 제공자 지원’을 명시적으로 선언하고, 연방 차원의 조정과 재정 투자, 가족 돌봄자 인정, 보수 인상, 교육훈련 체계 정비 등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단순히 종사자 수를 늘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돌봄 노동을 정의로운 노동으로 재정의하고, 그 사회적 가치를 복권시키는 철학적 전환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Care Work is Essential Work.(돌봄 노동은 필수 노동이다.)’라는 선언은, 장애인·노인 돌봄을 개인과 가족의 책임으로 한정하지 않고, 공동체와 국가가 함께 책임져야 할 공공 과제로 인정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이 명령은 노동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간 연계를 통해, 돌봄 분야의 직업적 커리어 개발을 제도화하고 있다. 예컨대 돌봄 종사자를 위한 직업훈련, 고등교육 연계, 고용 안정성 확대 등은 단기적 처방을 넘어, 지속 가능한 돌봄 생태계 조성을 위한 기반이 되고 있다.
우리에게도 이제 질문이 필요하다. ‘활동지원사 부족 문제는 단지 잔여적 복지 서비스 수급의 문제인가?’ 아니면 ‘누가 돌봄을 제공할 것인가, 그 돌봄의 가치는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문제인가?’
현재의 제도는 최소한의 서비스 제공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그러나 사람의 삶은 ‘최소한’을 넘어선다. 자립과 관계, 참여, 성장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돌봄은 단지 생존을 넘어선 삶의 질 보장과 직결된다. 따라서 돌봄을 단기 노동시장의 시각이 아닌, 사회보장 전략, 지역사회 연계, 가족과 당사자 중심 철학에서 접근해야 한다.
성남시의 실험과 바이든 정부의 전략은 모두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예외적 유예조치가 아니라, 돌봄의 정당성을 제도화하는 구조적 전환이다. 장애인 삶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지, 그리고 국가가 누구의 존엄을 지킬 의지가 있는지를 묻는 이 문제는 단지 복지정책이 아니라, 우리 사회 윤리를 시험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출처 : 미디어생활(https://www.imedialif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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